아이의 책 읽기 속도가 너무 빨라 걱정이라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저렇게 빨리 읽어서는 책 내용을 놓칠 게 뻔하니 말이지요. 그런데 희한한 일은 읽은 뒤 내용을 물어보면, 술술 얘기한다는 거예요. 어찌된 일일까요? 저렇게 빠른 속도로 읽고도 이야기 줄거리를 읊어대니, 과연 안심해도 될 일인지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독서하는 방법으로 속독과 정독 혹은 발췌독이라는 말을 쓰곤 합니다.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따라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고민이 되기도 하지요. 속독은 시간 투자에 비해 많은 책을 읽을 수 있고, 정독은 책의 세부적인 내용을 흡수할 수 있으며, 발췌독은 단편 지식이나 아이디어를 취할 수 있지요. 그런데 독서의 목적이나 책의 종류, 그리고 독자의 수준에 따라서 이 모든 방법을 한꺼번에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독자에 따라서는 그 중에 한 가지 방법만으로도 읽기가 어려울 수 있지요.
독서를 천천히, 그리고 많이 한 독자여야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고르거나 흥미로운 부분만 골라 읽을 수 있는 발췌독이 가능합니다. 또 특정 책들을 속독하기 위해서는 어휘력과 배경지식이 풍부해야 합니다. 그러니 아직 독서 경력이 짧은 우리 아이들에게 책을 너무 빨리 읽는 습관은 그릇된 방법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빨리 읽는 버릇은 어떻게 하여 만들어진 걸까요? 우선 부모의 과열된 교육으로 인해 빨리 읽는 버릇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정에서 할 수 있는 독서 교육으로 자녀의 학습력을 키우겠다는 열정과 의지가 다독을 강요한 경우입니다. 많이 읽으면 지식이 쌓이고, 그렇게 쌓인 지식이 학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매일 수십 권의 책을 읽도록 하는 가정이 종종 있습니다. 즐거운 책 읽기 경험보다는 남보다 빨리, 더 많은 책을 읽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보니, 독서의 진정한 목적에 도달하지 못한 채 문자만 읽어나간 경우에 해당합니다.
또 한 가지는 너무 이른 나이에 만화에 빠져버린 경우입니다. 만화는 천천히 보지 않아도 단번에 눈에 들어옵니다. 페이지 넘기는 속도가 빨라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습니다. 눈동자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옮겨가야 읽을 수 있는 책과는 달리 비선형적으로 봐도 이해할 수 있는 만화에 젖어 있다 보면, 빨리 읽는 행동이 습관이 되어 줄글의 책을 읽을 때 방해를 받게 됩니다. 즉 한 페이지에 오래 머물러야 이해할 수 있는 텍스트는 읽기 어려울 수 있지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읽기 속도가 빨라진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읽는 책은 그림책입니다. 그림책을 보다가 읽기 능력이 향상되면서 좀 더 긴 글의 이야기책을 읽는 게 순서이지요. 그런 와중에 만화나 동영상, 읽어 주는 앱 등을 통해 간간이 색다른 읽기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읽기의 발달 단계를 거치지 않고 너무 이른 시기에 만화를 접하다 보면 자칫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을 놓칠 수 있습니다.
한편, 빨리 읽었는데도 줄거리를 술술 말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의심스럽기는 한데, 줄거리를 알고 있으니 읽기 태도를 바꾸라고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알아두어야 할 점은, 이야기글의 경우 대강의 줄거리를 말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림책으로부터 출발하여 여러 권의 이야기책을 읽은 아이들은, 이야기글의 구조에 관한 스키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화책은 대개 몇 명의 인물이 어떠한 일에 연루되어 생긴 문제를 어떠한 방법으로 해결했다는 식의 구조를 띱니다. 내용의 세부 사항은 기억하지 못해도 대강의 줄거리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구조를 알기 때문입니다. 애니메이션 혹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아도 터득할 수 있는 구조이지요. 이런 이유로 이야기글의 줄거리를 술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지식책을 대강 읽었다면 어려운 일이지요. 해당 지식을 정확히 이해해야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충 빨리 읽는 습관이 몸에 배면, 책의 핵심 내용은 물론 지식 습득에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야기글은 인물의 일에 공감하고 감동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가능한 일이지요. 지식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글은 큰제목, 작은 제목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가 많아지는데, 제목은 상위 개념과 하위개념을 파악할 수 있는 열쇠이므로 간과하면 안 됩니다.
저학년이라면 그림책을 함께 읽으면서 페이지에 머무는 시간을 늘려가야 합니다. 지식책을 읽을 때는 사진이나 그림과 같은 시각 이미지를 보며 내용을 설명하라고 해도 좋고 부모가 부연 설명을 해 주어도 좋습니다. 이야기 그림책은 아이에게 읽어 달라고 주문해 보는 것도 좋지요. 전에는 보지 못했던 부분을 새롭게 찾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고학년의 경우 문학을 읽은 뒤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말하게 하거나, 인물 간의 관계를 그림으로 그려볼 수 있습니다. 또 인물과 사건을 종이 한 장에 그려봄으로써 내용 파악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지식글은 용어를 이해하고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배경지식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천천히 읽어야 공감과 감동의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천천히 읽는 습관이 몸에 배어야 모르는 용어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너무 빨리 읽어 걱정이라면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일, 책 읽어 주는 일부터 시작해 보세요.

- 약력소개
- 가톨릭대학교 독서학과 석사
청어람독서코칭센터 운영
국내 최초 '읽기능력 진단검사' 개발
FIE 중재자
EBS 부모60분 출연
조영구 신재은의 육아매거진 출연
- 주요저서
- <초등 적기글쓰기>(2016)
<초등 적기 독서>(2013)
<사회 교과서가 쉬워지는 사회책 도서관>(2012)
<과학교과서가 쉬워지는 과학책 도서관>(2011)
<생각을 키우는 독서논술 1~6단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