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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희
[그림책 교육]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요?
2021.09.29
조회수 : 438

 

 

 『할머니가 남긴 선물』
론 브룩스 그림, 마거릿 와일드 글, 최순희 옮김, 시공주니어, 1997

 

 

할머니와 손녀는 단둘이 살아가며 오랫동안 서로의 유일한 보호자이자 친구가 되어 준 것 같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살 수 있다면 싫어하는 옥수수 귀리죽만 먹어도 좋은 손녀. 그림책은 두 사람의 소박하고 정갈한 일상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일상에 곧 균열이 생기고 말지요. 손녀가 여느 때처럼 아침상을 차려 두었는데도 할머니가 일어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침대에 누워만 있던 할머니는 손녀와 같이 집을 나섭니다. 할머니는 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합니다. 다른 책을 새로 빌리지는 않았지요. 은행에서 돈을 전부 찾아 외상값도 갚고, 남은 돈을 손녀에게 줍니다. 손녀 돼지는 웃으려고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습니다. 울지 않기로 한 약속은 지키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손녀와 할머니는 함께 걷습니다. 할머니는 때때로 걸음을 멈춰 풍경을 보고 자연의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습니다.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 수다쟁이들처럼 모여 있는 구름, 정자가 비쳐드는 연못을 손녀와 둘러보지요. 한 폭의 멋진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그림이 자연의 생명력을 여실히 전해 줍니다. 덩그러니 혼자 남아 외롭게 살아갈 손녀에게 자연이 주는 위로를 미리 보여 주고 세상을 떠나려는 할머니 돼지의 깊은 속마음을, 손녀는 알까요?
 
 
“제목이 ‘할머니가 남긴 선물’인데 너희는 그 선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새, 햇살, 구름, 나무, 바람에게 할머니가 자기 대신 손녀를 위로해 주라고 한 것 같아요. 손녀가 혼자 살면서 힘들 때 할머니와 같이 봤던 걸 생각할 거예요.”
 
“저는 할머니가 주신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할머니는 손녀에게 ‘널 사랑한다’고, ‘그걸 잊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을 거예요.”
 
“죽음은 두려운 존재일 수 있지만 삶이라는 보석을 닦아 주는 수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삶을 더 빛내 주니까요. 우리가 책을 읽고 죽음에 대한 편견을 깬 일이 할머니의 선물이에요.”
 
“할머니도 선물을 남겼지만 손녀도 선물을 줬다고 생각해요. 할머니에게 울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요. 할머니는 혼자 남을 손녀를 많이 걱정했을 텐데 가장 좋은 선물이었을 거예요. 저도 다음에 부모님과 이별할 때 이 말씀을 꼭 드릴래요. 너무 많이는 울지 않겠다고요.”
 
할머니가 떠나면 손녀는 할머니의 따뜻한 품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겠지요. 대신 손녀가 살아가는 데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들을 남겨 주었습니다.
 
 
우리는 왜 죽음을 준비해야 할까요?
 
하루가 저물고 밤이 찾아옵니다. 손녀 돼지는 오늘이 마지막임을 예감하고 할머니 돼지를 안고 함께 눕고 싶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나쁜 꿈을 꾸면 할머니가 침대로 들어와 껴안아 주던 일을 생각했지요. 아이들은 이 장면을 두고 할머니뿐만 아니라 손녀도 죽음을 준비했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떠나는 사람’뿐만 아니라 ‘남겨질 사람’에게도 필요하고, 그래서 어른뿐만 아니라 어린이도 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지요.
 
한 아이가, 자신을 돌봐 주었던 유일한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면 무섭고 슬프고 외롭기 때문에 어린이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린아이라고 죽지 않는 건 아니므로 우리의 죽음도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한창 자랄 나이의 아이들이 죽음을 지나치게 가까이 인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 감각이 지속적인 공포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우려되었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삶의 소중함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가족을 사랑하고 함부로 대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는 일이 곧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가족을 싫어하는 마음만 가득하다면 갑자기 이별해야 할 때 너무 후회할 거라고요.
 
죽음과 관련된 책이나 영화를 함께 보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이런 자리도 어쩌면 ‘준비’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반 학생 중 한 명은 주말을 늘 할머니 댁에서 보내는 아이였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학교를 결석하게 되었는데, 후에 들어 보니 뜻밖에도 힘든 시간을 잘 극복하더라는 겁니다. 그 아이가 『할머니가 남긴 선물』을 읽고 쓴 글이 생각났습니다. 할머니의 선물을 ‘혼자 할 수 있는 힘’이라고 썼죠. 손녀의 곁에 있는 존재들을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손녀를 위해 준비한 친구’라고 하면서요. 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할머니와 이별을 생각 못 했을 아이. 어쩌면 이것이 ‘죽음 준비’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림책을 읽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글로 쓰면서 이별을 준비한 셈이죠.
 


삶의 가치는 죽음을 인식할 때부터 생깁니다. 살아 있을 때는 모르던 한 인생의 의미와 소중함은 죽음을 생각할 때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죽음을 향한 태도는 곧 삶을 향한 태도입니다. 인도 우화 속 아므리타는 신과 거래한 이후 죽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그의 삶도 마찬가지로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습니다.
 
익숙한 일상에 떠밀려 삶의 소중함을 잊어버린 순간, 누군가가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이 그림책을 다시 꺼내 보겠습니다. 할 일이 많다며 집을 나서는 할머니 돼지의 덤덤한 모습은 어쩌면 수많은 연습 끝에 나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손녀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는 연습,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연습, 그 모든 감정을 뒤로하고 손녀에게 살아가는 힘을 알려 주려는 연습을 했겠지요. 우리의 오늘이 바로 그 연습 1일차의 날입니다.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며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더없이 ‘새로운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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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희
약력소개
- 교사 연수, 웰다잉 지도자 양성 교육 등 ‘그림책으로 배우는 삶과 죽음’ 강의 다수
- 前 초등 교사
주요저서
<당신은 가고 나는 여기>
<삶의 성찰 - 죽음에게 묻다>
<그림책으로 배우는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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