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독서’가 중요하다고들 말합니다. 저 또한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독서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 아이에게 꾸준히 독서를 진행하는 분들도 어느 순간 ‘책을 꾸준히 읽는데 왜 어휘력이 특별히 좋아지는 것 같지 않지?’라는 궁금증이 들기도 합니다. 공부를 잘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른 채로 열심히 할 순 없습니다. 독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서를 잘해야 한다’는 말이 공허한 외침이나 형식적인 구호가 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읽는 게 잘 읽는 것인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1.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독서를 통한 사고력의 향상과 어휘력의 향상은 천천히 조금씩 나타나는 느린 작업입니다. 한 두 달 해서 반짝 결과가 나오면 좋겠지만 독서를 통해 어휘를 하나씩 모으는 중이고 지금 쌓는 어휘의 항아리가 가득 차서 넘치기 전까지는 외부로 아웃풋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의 저자 짐 트렐리즈는 책에서 모르는 단어를 익히려면 열두 번은 봐야 그 단어를 완전히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열두 번의 만남이 이루어진 이후에 어휘가 이해되고 기억 은행에 저장된다고 하니 우리는 그 열두 번의 단어를 아이가 충분히 만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아이가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알고 자발적인 독서가 이루어질 수 있을 때까지는 꾸준히 독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잘 읽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2. 아이의 수준에 맞는 책인지 확인해 보세요.
‘읽기는 언어를 배우는 최상의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유일한 방법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언어학자 스티븐 크라센 (Stephen D. Krashen)은 ‘읽기 혁명’이라는 본인의 책에서 ‘자발적 읽기(FVR: Free Voluntary Reading)’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읽기를 통해서 언어를 배울 수 있는데 그 읽기라는 것이 즐거움이 동반되는 ‘자발적 읽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가장 핵심 내용입니다. 아이가 즐거움이 동반되는 읽기를 하려면 재미있는 책, 자기 수준에 맞는 책을 읽어야 합니다.
독서는 선행이 아닙니다. 전집이 얼마나 비싼 데라며 한두 치수 큰 옷을 사 입히듯 1~2학년 높여서 책을 사주지 말아주세요. 아이들이 책을 싫어하게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두 개의 책을 놓고 고민이 될 때는 더 쉬운 책을 선택하는 것이 낫습니다. 저렇게 쉬운 책을 읽는 것이 어휘력 향상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어도 쉬운 책을 즐겁게 읽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글자를 ‘해독’하고 뜻을 이해하는 ‘독해’의 과정을 지나 내 나름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기화’하는 과정까지 거쳐야 잘 읽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이 너무 어려우면 아이는 책을 해독하는 것에서 멈추고 독해나 자기화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기 때문에 눈으로 글을 읽는 기계적인 과정을 거치는 것뿐입니다.
3. 잘 읽고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아이들의 디지털기기 접근율이 높은 요즘 아이들은 ‘아기돼지 삼형제’이야기를 그림책보다는 유튜브 동화 영상을, 종이책의 책장을 넘기는 것보다 스크롤을 내리는 것을 먼저 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이책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법을 충분히 배우고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디지털 읽기의 특성을 먼저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디지털 읽기와 종이책을 읽는 것은 각각 다른 방법의 읽기이며 디지털 읽기의 특징이 훑어 읽기인 만큼 이렇게 읽는 것에 익숙한 아이들은 ‘깊이 읽기’를 어려워합니다. 종이책 읽기 방법을 익히지 못한 채로 학교에 입학하여 줄글로 된 교과서를 살펴보고 문제집을 읽고, 긴 글의 책을 읽으려고 하나 잘 읽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소리 내어 읽기’ 방법을 추천합니다. 소리 내어 읽으면 빨리, 대충 읽으려는 습관을 고칠 수 있습니다. 글을 읽고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하면 어절 단위로 잘 끊어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글을 읽을 때, 정확한 발음으로 의미 단위로 묶어 읽지 못한다면 아이는 지금 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꾸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하는지 어디까지 의미의 단위인지를 구별할 수 있게 되므로 자연스레 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집니다. 또한, 눈으로 글자를 살펴 가며 입으로 계속 읽으면 책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책의 내용에 몰입하기 더 쉽습니다.
4. 짧은 콘텐츠 위주의 읽기 습관은 아닌가요?
글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때 글의 앞과 뒤의 내용을 통해 단어의 뜻이 무엇일지 ‘추론’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단어로 어휘를 확장하는 것이 독서로서 얻을 수 있는 큰 이점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많은 양의 독서를 하지만 학습 만화 위주의 독서를 한다면 ‘어휘력’ 측면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학습 만화를 한 번 살펴보면 글의 흐름이 아주 짧습니다. ‘그때, 커다란 버스가 굉음을 내며 내 앞으로 돌진하였습니다.’라는 상황을 ‘쾅!’ 한 마디면 짧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림 위주로 상황을 표현하기 때문에 짧은 글마저도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림으로 이해하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책도 다 즐겁게 읽는데 학습 만화도 잘 읽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학습 만화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긴 글 책을 거부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부족한 어휘력으로 글자가 많은 책은 읽기 어려우니 더욱 만화만 찾게 되고 어휘력은 더욱 빈곤해지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 약력소개
- - 현직 서울시 초등교사(경력 17년), 초등 엄마(초등 두 아들의 엄마)
- 서울교대, 동 대학원 교육행정 석사
- 2016 – 2021년 서울특별시 교육청 진로 교육 연구원
- 2019년 서울시 교육정책 연구원
- 2021년 아이스크림 원격교육연수원 ‘학습격차, 차이를 넘어 함께 성장하기’ 연수 촬영
- 네이버 블로그 ‘라온샘의 행복 일기’ 운영 중
- 주요저서
- <평생공부력은 초5에 결정된다> (2021.3 서사원)
<초등 어휘력이 공부력이다> (2021.11. 한빛라이프)
<학습 격차를 줄이는 수업 레시피> (2022.2 아이스크림미디어)